지금의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은 고장 나 있습니다. 교권은 등한시되고 학생인권이 필요 이상으로 우선시되어 교사가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하기조차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학생의 인권은 무시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다만, 통상적으로 인정이 되고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말입니다. 그간 유교문화가 근간인 우리나라에서 교권이란 거의 불가침 한 성역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던 속담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어쩌다 교권 침해도 아닌 “교권 추락”이라는 말이 통용이 되고, 사람들의 공감도 받는 상황이 되었을까요? 교권 추락에 관하여 주관적인 견해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주된 요인으로 수십 년간 이어진 학생인권 신장에 중점을 둔 정책 기조입니다. 1990년 문민정부 이래로 우리나라는 그간 뒤처졌던 각 분야의 인권 신장 문제에 대해 치중했습니다. 이는 교육계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간 보호받지 못했던 학생의 인권에 힘이 실렸고 그로 인해 필요 이상으로 우월했던 교사의 교권은 어느 정도 제한되어도 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치우친 우선 정책은 비단 교육 분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노사관계, 남녀관계, 장애인 관련 문제 등 다방면에 걸쳐서 만연한 문제 입니다. 이는 마치 “고장 난 양팔 저울”과 같은 형국으로 이 문제 관해선 다음 글에서 다시 논해보고자 합니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제도는 학생들은 혼란에 빠지게 하며, 이는 교편을 잡은 교사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수시로 바뀌는 정책을 확인해가며 지도 방침을 수정하자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최근 갑자기 이슈가 된 “수능 킬러문항 삭제”가 단적인 예입니다. 이런 잦은 어려움으로 인해 미처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역량이 부족한 교사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근래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교육 시스템의 정보화 변화에 제때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교사들 또한 상당수 존재합니다. 이런 교사들의 자질 부족은 학생과 학부형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부족한 자질 외에도 아직도 암암리에 벌어지는 부도덕한 관행들이 교권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학생 성추행과 폭력, 특히 입시와 관련한 시험문제 유출, 내신 관련 비리 등은 교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학교에서 수업 이외의 생활지도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교사란 개념이 과거 “스승”에서 “교원”(교육 공무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학부형은 교과에 대한 지도능력이 뛰어난 교사를 원하지 자기 자식의 인성을 바로잡아줄 스승을 원하지 않습니다. 학습 외의 부분은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으로 본인들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그간 변화해온 사회상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경제 부흥기 이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상당히 높았습니다. 5남매, 6남매가 흔했으며 그러다 보니 자녀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학습에 관한 영역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화 과정을 교사에게 일임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또한 학부모들의 교육수준도 낮은 시대였으므로 자신들보다 지식수준이 높은 교사에 대한 동경과 선망 또한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사에게 입에 붙은 말처럼 “지도편달”을 부탁한다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편달은 “채찍으로 매를 때리다”라는 뜻입니다. 물론 비유법이긴 하지만, 주마가편 마냥 말이 아닌 자기 자녀에게 매를 대서 올바르게 지도를 해달라고 쓰인 말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자녀 구성도 외둥이 대다수이며 둘만 되어도 다자녀 혜택을 받을 정도로 인구수(학생 인구)가 급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애착도 이전 세대와는 다릅니다. “편달”은 고사하고 강한 어조의 훈계도 “폭언으로 인한 정서적 “학대”로 해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학부모의 대부분이 대졸이며, 일부 엘리트 계층 부모들은 교사를 자신보다 못한 “강사”쯤으로 인식해 하대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 또한 그런 모습을 보며, 교사를 어려워하지도 않고, 자신의 잘못에도 훈계가 아닌 부탁을 해야 하는 사람, 즉 자기 부모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교육 용역 제공자”쯤으로 여기는 몬스터 페어런츠 들이 많습니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습니다. 교권과 학생인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쪽을 우선시하고 한쪽을 등한시하는 태도는 갈등을 야기합니다. 균형을 이룬 양립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학생(학부형)이 “갑”이고 교사가 “을”인 상황을 타파해야 합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양팔 저울에서 무거운 쪽은 덜어내고, 부족한 쪽은 더해주는 정책적 수정이 필요합니다.
교권 추락이란 사달이 난 원인은 외부 요인도 많지만, 교사들 스스로의 허물도 없지는 않습니다. 예전 이야기기는 하지만, 필요 이상의 체벌과 촌지 요구 등으로 본인들의 위신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교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역량 부족으로 학부형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자질 미달의 교사는 아직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교권 추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교권은 고귀하고 추앙받는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교권“추락” 즉, 떨어지다 “추”에 떨어질 “락”이라는 표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러러보이던 자리에서 한없이 떨어져 업신여겨지는 처지가 된 교권에 관해 과연 시류와 정책만의 잘못인지 본인들 스스로 되돌아보고 성찰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여겨집니다. 그리고 반성과 병행하여, 부조리 근절과 역량 강화에도 힘써야 할 것입니다.
교권 추락을 바로잡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학부형들의 인식 변화입니다. 소위 “금쪽이”라 칭하며 다른 주변 상황은 보지 않고, 자기 자식만 두둔하는 최근의 행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자신들의 논리대로 자기 자식 즉 학생이 최우선이고 교사는 둘째라는 그릇된 논리가 맞다고 칩시다. 그럼 자기 자식의 실수나 잘못을 교사는 감내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들의 논리상 학생은 최우선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1순위인 본인 자식이 다른 1순위인 학생에게 학습권을 침해받거나 위해를 받는다면? 교사는 혹여라도 학부모 진정이 들어올지 모르니 손 놓고 자기 몸 사리기 바빠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요?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논리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식만을 위하는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합니다. 더욱이 이런 잘못된 교육관이 본인 자식을 사회 부적응자 내지 남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부족한 인격체로 만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기 자식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교사들에게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은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인식 변화의 궁극적 수혜자가 교사가 아닌 일부 몰상식한 학부형으로부터 수업권을 침해받지 않을 자기 자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인간사 모든 문제가 같은 이치인 것 같습니다. 문제란 갈등에서 비롯되고 갈등은 어느 한쪽의 치우침에서 비롯됩니다. 어려운 사상도 아닌, 학창 시절 윤리시간에 배운 “중용”의 의미를 되짚어 봤으면합니다. 학부모뿐 아니라, 교사들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 모두 말입니다. 다 같이 신경 쓰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중 가장 명심해야 할 주체는 당연히 일부 몰지각한 학생 및 학부모라고 생각합니다.(주관적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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